소닉 유스의 팬이 되는 길
EXPERIENCE/듣기 2006/09/15 00:00 |통 음악을 듣고 있지 않던 요즘, 백년 만에 CD를 구입했다. 얼마전 신보가 나왔다는 소식을 들은 소닉유스를 집었고, 집에와서 비닐커버를 뜯어 앨범 커버를 살펴보았다. 팝송이나 락 앨범 커버 사이에 의례 끼어있기마련인 어떤 평론가의 호평이 들어있었고, 쓱 하고 살펴보았다. 글의 첫 머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기껏 곡 몇 곡 들어본 사람으로서 과감하게 말하자면 최근의 소닉 유스의 음악은 약간 엇나간 듯하다. 어떻게 생각하면 기분좋게 상상할 만한 어떤 음계를 일부러 피해가며 연주하는 듯 하며, 악기간의 연주는 불협화음이며 그나마 이번 앨범은 멜로디가 있는 편이라 다행이다 생각들 정도다. 그러나 그것은 단점이 아니다. 적어도 어떤 '고급취향의' 음악세계에서든 장조 화음의 평이한 전개를 가진 멜로디는 죄악이며, 난해함과 복잡함은 기본 소양인 것이다. 누군가가 소닉 유스의 노래를 들을 때, 소닉 유스를 모르는 사람이 다가와서 보일 반응은 둘 중 하나이다. 이상한 음악을 듣는다고 하거나, 음악적 심오함을 가지고 있다고 여길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길 하자면 그들의 음악은 많은 인디록이 그렇듯이 화음, 진행, 또는 사운드 중 어느 하나는 어떤 예견되는 상태(동시대적인 팝에서 많이 발견될 수 있는 친절함)에서 벗아나려는 의지를 보인다. 따라서 거칠고, 기분나쁠 수도 있고, 난해하고, 공허한 기분을 준다. 반면 비교적 인기있는 밴드인 뮤즈(Muse)의 경우 그것들 중 오직 기타 사운드만 좀 더 과격한 상태로 끌어올림으로써 상대적으로 새로운 느낌을 준다. Ok Computer앨범 이후의 라디오헤드(또는 톰 요크)는 그런 면에서 좀 더 인디록적인 가치를 갖추고 있긴 하나 의도된 하나의 느낌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난해함이 극복된다. 즉 다시 말해 라디오헤드가 독특하긴 하나 작자의 의도가 드러난 텍스트라면 소닉 유스는 다양한 방향으로 해석될 수 있는 열린 텍스트인 셈이다. -그러나 이건 지금 별로 하려는 말과 관계없다.)
그렇다면 나의 경우 순수한 마음으로 소닉 유스를 구입했는가에 대해서는 대답하기 힘들다. 앨범 콜렉션 같은 걸 해야겠다는 의지 같은 건 졸업한지 오래고, 소닉 유스의 지난 앨범을 재밌게 듣기는 했지만 그것이 그들의 이름에서 주는 나름의 후광 효과, 아방가르드적인 면모에 대한 이성적 또는 감상적 찬사에 의한 것인지 아닌지는 구분하기 힘들다. 정말 듣고 싶어서 인터넷에서 MP3를 찾아듣다가 결국 소유욕을 견디지 못해 CD를 산 것이라기 보다는 그저 어느 날 갑자기 적당한 음반이 사고 싶어져 골라 집어든 것이 소닉 유스였다면, 나의 구매가 순수한 음악적 동기였는가 하는 것이 의심스럽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을 하나의 요소 요소로 갈라 분석한다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불필요하다. 그것이 설사 불순한 의도였다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아우라에 의한 것이든 음악적 작용에 의한 것이든 현상적으로 나는 이미 즐기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나와 저 글을 쓴 사람 둘다 소닉 유스를 뭔가 '음악적 안목'을 대변하는 무엇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음악적 안목이란 고전주의 클래식이며 어떤 사람에게는 애시드 재즈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갱스터 뮤직이며, 어떤 사람에게는 자신이 최신 빌보드 탑10을 항상 듣고 있는 것을 음악적 안목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예전에 '예술과 사회'라는 수업을 들을 때, 강사가 수업을 마쳐갈때쯤 부르디외에 대해 잠깐 언급하였는데, 그의 이론에서는 취미가 계층을 구분하고, 구분한 자를 구분시킨다는 주장을 펼친다.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에서 부르조아는 학습이 필요한 취미(또는 취향)라는 것으로 일반 서민과 계층적 구분을 둔다. 취향을 가짐으로써 차이의 감각을 유지하고 자신의 우월성을 증명한다는 것이다. 그 얘기는 '락 음악이 댄스 음악에 비해 왜 우월한가'에 대한 맥락에서 나왔는데, 부르디외의 이론에 어느정도 동조는 하지만 솔직한 심정으로 반발하고 싶었다. 왜냐하면 현대사회에서 록음악을 듣는 정도의 취향 선택은 사실 계급성과는 별로 상관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어느 정도의 중산층 이상이 가능한 것이라 할 수도 있고, 그런 여유 자체가 일차적인 문제가 해결된 사람들만이 가능한 것이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선택의 문제가 남는다. 하고많은 취향 중 록음악을 선택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좀 더 전위적인 것을 선택하려는 취향이야 말로 부르디외가 비판하려고 하는 바로 그 지점이고, 앨범 소개 글을 쓴 그 사람이 경계한 자신의 본질과는 상관없이 좀 더 높은 음악적 안목을 유지하려 애쓰는 불순한 의도의 결과 일 수 있다. 그러나 따질 만한 점은 그런 가치체계(이 노래는 이 노래보다 고급이다라는 확실한 관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전체에 비해 극히 소수이며 그러한 점이 외부 사람에 보기에는 자위에 불과한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점이다.
청년 시절, 대중음악이라는 커다란 흐름에서 갈라져나와 팝송 또는 록음악을 듣고, 너바나를 듣고,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을 거쳐 소닉 유스 등등에 이르게 된 나와 혹은 나와 같은 사람들은 얼마나 섬과 같은 곳에 서 있는가.
※ 이 글에 인용된 '소닉 유스'라는 그룹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렇다고 심하게 마이너한 성향은 아님을 밝혀둔다. 이런 얘기를 덧붙이는 이유는 그런 사람들이 소수라고 하기에는 또 제법 많기 때문이다.
또한 인용된 소닉 유스, 뮤즈, 라디오헤드에 대한 평가는 순간적이고 개인적인 것이며 그다지 참고할 만한 성격이 못된다.
참고로 나는 소닉 유스를 평소에 그렇게 열광적으로 좋아하지는 않으며, 이 글에서 굳이 소닉 유스를 인용한 이유는 단지 그저께 앨범을 샀기 때문이다.




